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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운명=>문재인

더카나(더날카로운나) 2018. 1. 10. 13:43

 

대학시절 유신반대 데모한 이유로 1982년 사법연수원

수료 후 임용되지 않아 변호사 길을 결심하고 직장다니던

아내와 함께 부산으로 내려와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

합동법률사무소를 차렸다

시국사건을 맡으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였던

송기인신부님을 알게되었다

83년 하반기부터 노변호사는 인권변호사 업무만 전념

87년 서울대생 고김종철 고문사건이 6월 항쟁으로

이어져 군부독재정권의 항복 선언인 6.29선언이

발표되어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다

노변호사가 부산 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의

상임집행위원장, 문변호사는 상임집행위원을 맡았다

노변호사가 '사람 사는 세상' 선거 구호로 국회의원

당선되어 자리를 비운 후 다른 변호사들과 함께

법무법인 설립 후 인권, 시민, 노동 등 세분화하여

활동하였다

노의원이 2001년 대선출마 선언 후 문변호사는

부산선대본부장을 맡았고 대선에서 승리하였다

부모님은 함경남도 흥남 문씨 집성촌에 사시다

1950년 12월 흥남 철수때 고향떠나 거제에서

피난 생활중 태어났다

초등학교 입학때 부산으로 이사. 경남중.고 졸업

재수로 경희대 법대 입학

유신 반대 시위 주도로 제적되고 구속 중 지금의

아내가 면회왔다

집행유예로 석방 후 바로 강제 징집으로 공수부대

입대 만기제대

부친의 급작스런 사망에 잘되는 모습을 보여주기위해

사법시험 준비 중 복학

유치장에서 사법시험 합격 축하주를 받았다

노대통령 당선 후 민정수석비서관으로 내정

(민정수석실의 권위주의 타파, 검찰과 국정원 등

국가권력기관 개혁 요구로 여김) 후 참여정부 인사,

대북송금 특검, 검찰개혁, 국정원 개혁,

국세청 개혁, 노동문제 등 접하였다

북핵에 대한 미국 네오콘의 강경론을 막기위해

이라크 파병은 국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총선 출마 권유의 부담과 건강상 문제로 민정수석직을

그만두고 청와대를 나왔다

금연하게된 히말라야 트레킹하는 중 신문으로

대통령 탄핵을 보고 아내와 함께 서둘러 귀국했다

변호사를 재개업 신고하고 탄핵대리인단을 구성하여

대비한 결과 탄핵 기각되고 시민사회수석실 책임자로

다시 청와대 들어왔지만 이기준 교육부총리

인사파동으로 사퇴 후 민정수석으로 옮겼다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이 되면

대연정하겠다는 노대통령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사법개혁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를

통한 과거사 정리작업 진행

2006년 5월 민정수석 사임 후 정무특보 역임

반기문 유엔총장으로 선출

2007년 3월 비서실장으로 임명 되었다

노대통령은 한.미동맹이나 정치가 아닌 오직 국익을

위한 장사꾼 논리로 한미FTA 협상에 임하라고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에게 당부했다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어 남북정상 회담 성사

2008년 노대통령 퇴임 때 청와대를 나와 경남 양산

시골집을 얻어 거쳐를 옮겼다

퇴임 후 공식석상 수행원 등 자주 봉하마을에 방문하였다

노대통령은 태광실업 박연차회장 사건으로

2009년 4월30일 조사 받으러 대검 청사 출석

5월23일 노대통령 서거로 국민장 장례

노무현재단 이사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