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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들 로드 =>KBS 누들로드 제작팀 이욱정 지음

더카나(더날카로운나) 2017. 1. 3. 15:29

 

누들 로드 =>KBS 누들로드 제작팀.이욱정 지음

3천 년을 살아남은 기묘한 음식, 국수의 길을 따라가다.

 

인류 최초의 국수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2000년 동안 실크로드의 거점이며

동서교역의 중심지였던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다큐멘터리 시작

신장 위구르족은 250년 전 청나라 때

중국에 편입되었으나 변방 이어서

행정력이 미치지 못했으며 이 지역의

독자적인 문화가 형성

2500년 전 고대 집단무덤이 발견된 화염산에서

칼, 국수, 볍씨등 발견

투루판은 해수면보다 154미터나 더 낮으며 덥고

건조하나 톈산 산맥의 만년설이 녹은 물을

지하 수로를 통해 공급하여 맛있는 포도 생산

신장 샤오허 유적에서 발견된 밀알은 7000년

전 인류 최초 밀 재배했던 메소포타미아에서

가까운 지금 이란 쿠제스탄이 원산지이다

화염산 인근의 고대도시 교화고성

(쟈오허 고성)은 실크로드의 요충지였기에

한족과 차사국 사이의 충돌이 잦았다

중국 최초의 국수는 1400년 전 가사협이 쓴

제민요술에 있는 수인병

실크로드의 시작점인 시안의 회족 마을

서역의 영향을 받은 음식을 호식이라 불렀다

호병, 호두,호강 ,호떡 등 호자가 붙은 것은

서역에서 수입된 것

산시성(섬서성)에는 밀 생산가능한 평원과

밭작물이 나는 산지와 강한 불을 내는 석탄이

생산되어 다양한 종류의 국수가 만들어진다하여

국수의 고향이라 부른다

도삭면은 원나라가 중국을 지배할 때

반란 방지를 위해 집안의 모든 칼을 몰수하여

국수를 먹고싶어하는 부부가 철판을 이용한 것이 시초

일근면은 한 가닥의 국수로 만든 한 그릇 국수

젓가락면, 고양이귀 국수, 수타면(1키로그램의

밀반죽으로 2백만 가닥의 국수도 가능-점성과

탄성을 좋게하는 견수라는 알카리 성분이 함유된

물 때문에 가능)

서역과의 교역이 활발했던 허난성 카이펑이

수도인 송나라 때부터 건식의 재료와 습식의

조리법인 빠르고 간편한 국수 문화가 발달

임안을 도읍지로 한 남송 시대에 국수가

그리워 밀 대신 쌀을 이용한 쌀국수가 성행

광시성 용승에는 장족들에 의해 600년 긴 세월 동안

계단식 논인 다랑논을 일궈왔으며 벼를 숭배하는

장족은 청개구리를 하늘에서 비를 주관하는

번개신의 딸로 여김

장족은 비의 상징인 청개구리를 위한

마괴절이라는 명절을 지낸다

윈난성 스솽반나에는 태국인과 한 조상인

다이족이 거주하며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칸의

침략을 피해 배를 타고 메콩강을 건너

탈출한 것이 용주경기의 기원이고 다이족이

가장 많이 정착한 나라가 태국이다

다이족과 바이족이 세운 대리국은 938년에

세워져 22대 300년간 지속되다 1253년

쿠빌라이칸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태국에서는 쌀의 신을 임신한 여인과 동일시 여겨

벼가 익어갈때 산모가 좋아하는 과일을 제물로 바친다

태국의 쌀국수 카눔친 만드는 방법은

중국 남부지역의 방법과 유사하다

동남아에서 중국인이 많은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태국, 베트남에서만 젓가락을 사용한다

부탄은 전통문화와 자연환경 보전을 위해

외국인 관광객을 1만 명으로 제한

부탄 국민은 누구나 전통의복을 입고 다니며

도심에는 신호등이 없어 운전가 알아서 주행한다

 

부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오색깃발 '다루초'는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 때 발생한 다섯가지 빛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황색은 땅, 청색은 물,

백색은 구름, 적색은 사람, 녹색은 식물을

뜻하기도 하고 다섯명의 부처(바이로차나 ㅡ청색,

바즈라사트바ㅡ백색, 라트나삼바바ㅡ황색,

아미타바ㅡ적색, 아모가싯디ㅡ녹색)를

상징하기도하며 건강과 행운을 비는 소원의 깃발이다

 

부탄의 메밀국수는 손이 많이가는 면음식이어서

먹는 빈도가 낮으며

부탄의 국수틀은 중국 산시성의 압출식

메밀 국수틀과 매우 유사하다

17~18세기 중국 동북부에서 한반도로 전해진

메밀 국수틀은 중국, 부탄것과 매우 흡사하다

한강 이북은 메밀 국수가 유명하고 한강 이남은

밀을 이용한 칼국수 문화가 발달

안동 수졸당 종택에서는 유두절날 유두천신

제사상에 국수를 올린다

불교를 숭배했던 고려시대에 당으로 유학갔다

온 승려들에 의해 국수 문화가 유입

일본 교토 동복사 쇼이치 국사는 중국 송나라에서

국수문화를 일본에 전파한 대표적 인물

 

제분기술인 맷돌 보급으로 에도시대(1603~1867)

이후 고급 음식인 국수가 일반 민중의 음식이 되었다

16세기 말 17세기 초 에도시대 일본에서 생겨

발달한 소바는 신슈(시나노노쿠니의 별칭)소바를

으뜸으로 꼽는다.

18세기 에도(지금의 도쿄)시대 이후 구황작물인

메밀국수 소바가 밀국수 우동보다 더 주류가

된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은 뒤

관서지방(교토, 나라)에서 관동지방(도쿄)으로

옮기면서 관서지방의 우동보다 관동지방의

소바가 더 주류가 되었다

말린 가다랑어를 발효시킨 후 건조하여

대패로 깎은 가츠오부시를 만드는 회사인

닌벤은 1699년에 설립 된 일본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회사이다

 

개방전까지 에도시대는 그들만의 폐쇄적인 문화로써

반란을 방지하기 위해 에도시대 통치세력인

도쿠가와 막부는 쇼군(막부의 수장)이 다이묘를

영주로 임명하고 다이묘의 처자식을 격년으로

1년씩 인질로 에도에 거주하게하는

참근교대제에 의해 매년 30~40만 명의 무사가

거주하여 인구 100만의 거대 도시로 성장 가능

 

1154년 이슬람의 지리학자가 쓴

유럽 지리서에 의하면 이탈리아

최초 건조 파스타는 이슬람 건조 국수였다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는 외세 침략을 많이 받았으며

이로 이슬람 문화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당나라와 아랍의 전쟁에서 당이 패하자

포로 중 한 명인 종이 만드는 기술자가

아랍의 포로가 되어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서

제지기술를 전파하여 종이의 명산지가 되었고

유럽으로 전해졌다

이탈리아 남부인 나폴리에서 건조 파스타가

발달한 이유는 다량의 듀럼밀 생산, 건조하기 좋은 기후,

수출.입이 용이한 항구도시, 나사식 압출기와 같은

제면 기술의 발달 등이다

 

1630년 나폴리는 인구 증가와 육류공급 감소로

돈 벌러 온 가난한 독신남에게 인기 음식이었다

일본 에도시대 소바는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무사들에게 나폴리 파스타는

혼자 사는 남자 노동자에게 일종의 한 끼 식사격인

패스트푸드였다

1958년 48세에 식량난과 쌀 대체식품으로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한 일본 닛산식품 창업자인

안도 모모후쿠는 우주에서 먹을 수 있는 라면을

개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