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사목 표어
1922년 봄 친가 외가 모두 신앙이 돈독한 집안에서 5남3녀 막내로 대구에서 옹기장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시고 어머님이 생계 유지
어머니 권유로 대구 성유스티노 신학교로 옮겨 졸업 후 동성학교 입학. 성직자 길에 대해 고민.
황국신민의 소감을 쓰라는 졸업반 시험 문제에 '나는 황국신민이 아님. 따라서 소감이 없음. '라고 적어 퇴학 위기에 놓였지만 오히려 주교로 부터 유학 추천을 받는다
유학 중 징집되어 군교육 중 해방되어 귀국 후 신학교 졸업 사제가 됨
1951년 대구 계산동 주교좌성당에서 사제 서품
첫부임지로 안동본당(현 목성동 주교좌 본당)
주임신부가 됨
대구 교구 김천성당 교장 뒤 독일 유학 63년귀국
가톨릭시보사 사장직 역임
1962년 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 (쇄신과 일치를 강조) -아죠르나멘토
1966년 마산교구장 주교가 됨
깅화도 심도직물 사건으로 교회 최초 시국 담화문 발표
1968년 47세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어 대주교로 승품
1969년 사제 서품받은지 15년 만에 현존하는 세계 최연소 추기경이 됨(한국은 자생적 복음 전파, 독일 유학, 가톨릭 시보사 재직중 개혁적 태도와 제2차 바티칸공회의 정신 등이 연관 된것으로 추정)
인권보장에 앞장서 정부와 잦은 충돌
79년 한달간의 피정 후 가난하고 힘없고 소외된 자들 편에 서려고 함
소록도 방문 중 마리안느 수녀와 마가렛 수녀 만나서 느낌, 마더 테레사 방문 영접.
1981년 조선교구150주년, 한국교회 200주년
103위 성인식 성사되어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에 이어
세계4번째 많은 성인 탄생
평화는 남에게 밥이 되어줄 때 이루어진다.
한마음한몸운동 전개
군부시대가 끝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 북한 선교에 관심을 두고 대북지원 시작
40여년간 목자를 기다리는 양떼를 만나는 심정으로 종교 활동이 통일로 연결되길 소망
1998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남
사목표어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성균관대에서 심산상 받음 수상자는 심산 김창숙 기일에 묘에 참배 해야하는데 추기경은 거리낌없이 여섯번의 큰절과 술잔을 올렸다
심산선생에게 하느님의 영원한 안식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큰절을 올린 겁니다
종교화합의 의미에서 1997년 길상사에서 축사
인간존중으로 사형제 폐지 호소로 2007년 국제엠네스티는 사실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
묘비명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추기경님은 항상 자신을 낮추고
무소유의 삶을 사셨다
2009년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 선종
선종후 약속대로 두 눈의 각망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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