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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제국 가야=>김종성 지음

더카나(더날카로운나) 2021. 4. 4. 14:25

잊혀진 왕국 가야의 실체
한반도 고대왕국은 공통적으로 외래세력과 토착세력의 결합에 의해 나라가 세워졌다
고조선은 북방 출신의 외래세력인 환웅 집단과 곰부족인 토착세력이 연합하여 탄생하였고, 고구려는 부여의 고주몽인 외래세력과 졸본의 토착세력인 연타발의 딸 소서노와의 결혼을 통한 연합으로 건국되었다
인도나 동남아 지역의 고인돌은 200여 기 미만, 중국 요녕 지방 고인돌은 316기, 일본 규슈의 고인돌은 500여 기, 유럽 전역의 고인돌은 5만5천 여 기가 발견되었으나 한반도에는 3만 기 이상의 고인돌이 발견되어 고인돌 왕국이라 불릴 만하다.
추장으로서 백성을 이끈 9간이 김해 구지봉에서 금합 안에 6개의 알을 발견하고 12시간이 흐르자어린 아이로 변하여 집으로 데려와 10일이 지나자 성인이 된 김수로가 왕위에 올랐다
김수로가 세운 나라는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5가야(아라가야, 고령가야, 대가야, 성산가야, 소가야)가 연맹하는 형태의 국가였다
한나라에 붙잡힌 흉노족 김일제의 후손이 한무제의 신임을 받아 조정의 실권을 잡은 뒤 김왕망이란 인물이 한나라를 뒤엎고 신나라(8~23)를 세웠으나 광무제에게 망하여 김일제의 후손들이 한반도 남부로 이동하여 가야를 건국했다는 주장도 있다
중국 섬서성에서 발견된 당나라에서 살다 죽은 신라 여인의 비석에 김씨 부인의 시조는 소호금천씨이고 중간 시조는 용정(흉노족의 조정을 뜻함)에서 귀순한 김일제이다라는 글이 있다
용정에서 귀순한 김일제가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의 조상이었다
가야 건국 2년(43) 정월에 김수로는 성곽, 궁궐, 가옥, 관청 등을 갖춘 신도시를 건설하였으며 캄차카 반도로 추정되는 '왜국 동북쪽 1 천 리'에서 온 석탈해가 김수로에게 대적하였으나 패하여 가야에서 쫓겨나 신라로 도피하여 정권을 장악 신라제 1대 박혁거세를 이어 57년에 제 4대신라 이사금으로 즉위했다
서기 48년에 김수로는 인도 북부 아요디아 지역 아유타 왕국의 딸인 허황옥을 왕비로 맞이했다
허황옥의 집안은 기원전 1 세기에 아요디아가 쿠샨족의 침략으로 중국 사천성 안악현의 보주로 망명하여 다시 무한으로 이주하여 양자강을 따라 바다 건너 김해에 이르러 서기 48년에 김수로와 혼인하여 왕후가 되었다
김수로 납능의 정문에 있는 쌍어문은 가야와 인도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며 허황옥의 비석에 보주태후 글자가 적혀있다
500여 척의 함선을 이끌고 있는 김수로 집단은 멸망당한 신나라 황실의 일족으로 여겨지며
허황옥의 집안과는 전부터 상호 소통이 있었는듯 하다
가야 건국 시기에 이민족(캄차카 반도 석탈해,  흉노족의 김수로, 인도의 허황옥  등)이 가야 땅으로 끌어들인 원동력으로 민족들 간의 상호 충돌과 정치적 경계의 이완 조건이 형성된 민족대이동으로 여겨진다
흉노족과 한나라와의 전쟁 중에 고조선이 멸망하면서 북방민족이 남방으로의 민족이동이 두드러졌으며 이 시기 가야의 건국은 철기문명의 등장과 관련되어 있다
토착세력, 김수로 집단, 허황옥 집단 세 집단이 결합한 서기 48년이 가야 문화의 기초가  놓인 시기라 하겠다
신라 파사이사금 21년(100)에  큰 지진으로 가야를 상국이고 신라가 속국이 되었다가 27년(106)에 관계가 해소되었다
가야대국은 2~3세기에 일본 규슈 지역에 존재했던 소국의 연합체로 여왕인 히미코를 모시는 묘견신궁에서 아유타와 가야와의 유대를 보여주는 쌍어문과 가야에서 출토된 돌거북이 발견된 것을 보면 가야와 야마대국은  서로 연관이 있음을 뜻이며 김수로의 딸과 아들이 야마대국을 건설하였다는 설도 있다
가야는 뛰어난 제철기술과 철 무역을 바탕으로 중국, 한반도, 일본 열도를 잇는 정치적, 경제적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기원전 770~30년까지 온난기였던 기후가 기원전 29년부터 서기 600년까지 한랭기 도래로 흉노족, 선비족 등 유목민족의 남하로 5호 16국의 시대(304~439)가  열렸고, 유목민족의 남하는 한족의 남하로 양자강 유역의 개발을 불러왔으며, 한족의 남하는 배트남인들의 조상인 월족의 남하를 가져왔다
5호16국 시대가 끝나고 북중국을 통일한 북위와 남쪽 한족의 남조의 동진인 위진남북조 시대에 고구려 장수왕은 중원과 관계를 유지하는 균형 외교를 하면서 한반도 남하 정책으로 백제와 신라의 반작용은 가야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고구려, 신라, 백제는 율령을 반포하고 중앙집권국가로 도약하였으나 가야는 연맹체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400년에 가야와 왜국 연합군은고구려에 대패 후 532년 김수로의 직할지이자 김유신의 증조부인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김구해는 신라에 투항하여 신라에 패망하고 562년에 후기 가야연맹의 맹주인 대가야 멸망으로 건국 521년만에 가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가야는 현해탄 중심 국가로 일본 규슈에 분신(아직 확정된건 아니지만)인 야마대국과 동맹 관계였지만 가야가 망한 후에는 갈등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김유신은 김수로의 12대손
고려 금관주지사의 가락국기ㅡ1075~1084년
김부식의 삼국사기ㅡ1145년
일연의 삼국유사ㅡ128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