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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무사=> 최형국 지음

더카나(더날카로운나) 2019. 11. 24. 05:54

 

ㆍ조선을 지킨 무인과 무기 그리고 이름 없는 백성 이야기

ㆍ저자는 중앙대학교 대학원 역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사)무예24기보존회시범단장 역임. 무예24기연구소 운영

ㆍ고려가 원나라로부터 되찾은 북부지방을 명나라가 요동에 편입시키려하자 고려 우왕과 최영은 이성계에게 5만 군사를 내주어 요동정벌을 명했으나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우왕을 강화도에 강금하고 최영을 고봉현에 유배 보낸 후 조선을 세움

ㆍ조선시대 공무원 시험ㅡ대과(문인을 뽑는 문과와 무인을 뽑는 무과는 과거 시험) , 소과(생원, 진사를 뽑는 사마시), 잡과(중인을 위한 기술직)

ㆍ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무과에 많은 합격자가 배출되어 대기발령자도 많아졌다

ㆍ조선시대 무인은 조선의 중심축인 양반의 한 축으로 문인에 미치지 못했지만 지배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ㆍ조선시대 사복시라는 관청은 군마를 사육, 관리 등 전반적인 부분을 관장하는 군사의 핵심 기관이었으며 군마 한마리 유지비는 일반 병사 네 명에 해당되는 비용이 들었다

ㆍ일반 목장에 일정 수량을 배분하여 점마관이 말의 상태를 점검하며 이 날은 백성들이 준비히느라 곤욕을 치른다

ㆍ조선전기 159개의 국영 목장이 있었으며, 말과 소를 전문적으로 키우는 목자는 년간 일정 수량의 새끼를 생산해야 한다

ㆍ1399년에 최초 마의학서인 <신편집성마의방>이 편찬되었고 사복시에는 말을 치료하는 마의가 소속돼 있었다

ㆍ봉수는 밤에는 봉(햇불)으로 낮에는 수(연기)로 변방의 상황을 전달하는 통신수단으로 조선시대 전국에 많은 경우 703개가 설치되어 북방의 야인과 남방의 왜구 침범을 한양에 알렸으며 날씨가 좋지 않아 봉수대가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 가까이는 3리에서 멀게는70리를 봉수군이 뛰어 가서 다음 봉수대에 알렸다

ㆍ조선시대 대표적인 세금인 조용조는 조-토지세, 용-인세, 조-거주세며 요역중에 축성역이 제일 힘들었다

ㆍ정조때 축성된 화성은 10년을 예상 하였으나 거중기등 축성 기구 도입과 투입된 모든 인력에게 품삯 지급으로 2년6개월만에 완성하였다

ㆍ한 초ㅡ125명, 한 사ㅡ600명, 한 영ㅡ3000명

ㆍ병자호란 당시 경기도 광주 쌍령 전투에서 청군 기병 300명에게 훈련과 교육 받지 못한 조선군 4만 명이 전멸 당해 포위당한 남한산성을 구하지 못했다

ㆍ당파(일명 삼지창)는 임진왜란 당시 명군에 의해 도입 되었으며 상대 무기를 제압하는 특수 병기로 용맹하고 담력이 있는 특별히 선발 된 자가 소지한다

ㆍ조선시대 군역으로 온 대부분 병사는 갑옷과 무기를 개인이 준비해야 하지만 가난한 백성은 철갑옷 대신 피갑(가죽갑옷)이나 지갑(종이갑옷)을 입는 일이 많았다

ㆍ소나 산짐승의 가죽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돼지 가죽인 생저피값도 상승하여 돼지가죽 1장에 포 10필, 생저피 갑옷 한 벌에 포 50 필 가격으로 샀으며 종이갑옷에 쓰이는 종이도 비싸져 서책이나 문서를 훔치는 백성이 나왔다

ㆍ전투부대 인원은 통ㅡ12명, 부ㅡ50명, 위ㅡ250명으로 오위진법은 조선시대 군사조직의 편제 단위인 위와 결합하여 생겨났으며 진법의 생명인 신호체계로는 깃발, 악기 등이 있다

ㆍ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조총병은 전체 병력의 10% 내외이고 칼과 창으로 무장한 보병이 절반이 넘었다

ㆍ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정조에 이르러 대규모 군사가 움직이는 진법을 정리한 <병학통>을 간행하였고, 개인이 단병접전 무예를 익히도록 <무예도보통지>를 편찬 ㆍ보급 하여 체계적인 군사훈련의 기틀이 마련 되었으나 정조가 사망하면서 보완작업이 좌절되었다

ㆍ장용영은 정조시대 창설된 민생개혁 의지를 뒷받침하는 최강의 군사조직인 국왕 친위부대이었으나 정조의 승하 후 해체 되었다

ㆍ겸사복은 조선초기 임금을 호위하는 최고 정예 부대로 8척(1척은 약23센티미터로 1902년 일제에 의해 30.3센티미터로 바뀜) 장신에 용모가 수려하고 학문과 무예가 뛰어나야 선정 되었으며 전시에는 최전방에서 아군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ㆍ착호군은 조선시대 궁궐이나 민가에 출몰하는 호랑이를 전문적으로 잡는 일종의 특수부대이며 왕의 호위 업무를 맡고있다

ㆍ조선초 신부가 바뀔뻔한 겸사복 박효공

ㆍ화살의 크기가 작아 애기살이라고도 하는 편전은 화살 받침대인 통아를 이용하여 강력한 파괴력과 날아가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조선만의 강력한 무기였다

ㆍ동양 삼국의 장기를 말할 때 중국은 창, 일본은 도, 조선은 활이라 평가한다

ㆍ이성계의 활쏘기 실력은 200보 밖에 왜군의 엉덩이를 맞추었으며 조선 병사는 날아가는 새의 왼쪽이나 오른쪽 날개 맞추기 내기를 하고, 조선 수군은 흔들리는 배에서 방패 위로 나온 왜군의 머리를 맞추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ㆍ고구려의 중국 방어선인 산성은 1차 방어용 산성은 요하지역을 잇는 요동성, 안시성 등이 있고, 2차 방어용 산성은 압록강을 중심으로 잇는 오골성, 국내성 등이 있으며, 3차 방어용 산성은 평양의 대성산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ㆍ645년 양만춘은 안시성의 형태를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당태종의 공격을 물리 쳤으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전투는 최악의 전투라 할 수 있으며

, 고구려 산성과 중국 성제의 장점을 모아 건축된 수원 화성은 효과적인 공격과 방어가 되도록 설계되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ㆍ양날 검은 주술적 상징성으로 의례적 목적에 사용하며 찌르기 공격이 핵심이고, 외날 도는 베는 것이 중요 특징으로 장군이나 병사가 사용하는 형태이다

ㆍ조선시대 특이한 화약무기로 폭발 시간 조절이 가능한 비진천뢰, 수류탄처럼 손으로 던지는 질려포통, 공중에서 폭발하여 적에게 유해 물질을 퍼뜨리는 생화학탄과 유사한 비몽포, 지뢰와 유사한 목통, 오늘날 전함을 잡는 기뢰와 유사한 공선수뢰등 무기들이 실전에 활용되었다

ㆍ조선의 판옥선은 철못 대신 나무못을 사용하여 수리를 위한 부분 교체, 충격 흡수, 부식을 방지하며 바닥이 평평하고 강한 소나무를 사용하여 화포 사용이 가능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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