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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클라스 => JTBS<차이나는 클라스> 제작팀 지음 국가. 법. 리더. 역사 편

더카나(더날카로운나) 2021. 9. 13. 10:17

국가
문정인ㅡ연세대학교 철학과 졸업, 미국 메릴랜드대학교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 취득. 국제정치학 분야 최고 권위자로 문재인 정부의 비상임 외교안보 특별보좌관
2000년을 기점으로 급 부상한 중국은 경제력에서는 미국을 앞서고 현재의 경제 성장률이 유지되면 2050년에는 군사력 또한 미국을 앞설 전망이다
중국은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전략으로 일대일로의 전략은 육상과 해상의 실크로드를 만드는 것이다(중국의 대전략ㅡ1.화평발전론, 2.책임대국론, 3.대국굴기론)
패권국과 도전국 사이의 세력 전이를 인정하면 평화가 아니면, 전쟁이 발생한다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1648~현재까지 주요 94개의 전쟁 원인)-명예, 지위, 정체성(58%), 안보(18%),  복수,보복(10%),  국익(7%),  기타(7%)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 선택적 외교(미국에는 안보, 중에는 경제)가 아닌 다자안보 협력체제를 만들자

조한혜정ㅡ문화인류학자이자 연세대 명예교수

조영태ㅡ인구학 박사이자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인구학은 인간의 출생, 사망, 이주 등의 인구현상을 통해 사람들의 삶의 전반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으로 현재의 추세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1958~1974년에는 매년 90~100만 명이던 신생아가 2002년부터 50만 명 이하로 급감하기 시작
개인이 결혼을 하든 결혼하지 않든, 아이를 낳든 안 낳든 모두 개인의 선택이므로 국가는 개인이 선택하도록 만들어주면 된다
IMF 사태를 계기로 초저출산 발생(합계 출산율이 1.3 이하로 1983년 2.0,  1990년 1.75, 2002년에 1.17명)
사람들은 부모님과 같이 사는 어린 시절에 경험한 것보다 현재와 미래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출산을 한다 그러므로 청년 정책이 나와야 한다
10년간 100조 예산 투입했지만 개선이 없는 현재까지의 인구정책은 복지정책 위주에서 교육(선 취업, 후 진학), 출산모에게 직불제(50만명에게 투입된 예산 38조를 일인당 7천만원 지급) 등 장기적인 추계가 가능한 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


박준영ㅡ돈 안되는 사건만 맡는 파산변호사
2000년 8월 익산 약촌오거리에서 택시기사 살해된 채 발견되어 범인으로 15살 소년이 잡혀 자백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 10년 형을 받고 복역 중 진범이 잡혔으나 소년의 판결은 뒤집어지지 않았고 소년은 만기 복역하게되었다. 소년에게 누명을 씌운 경찰 중 한 사람은 자살하고 진범을 숨겼던 친구도 자살. 재심으로 소년은 무죄 판결을 받고 진범은 15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중이다
1심 판결 이후 2심은 항소심, 3심은 상고심이라 하며 결론이 내려지면 '법적 안전성' 차원에서 번복이 안된다
국선변호를 하면서 수원 노숙 소녀 사건을 시작으로 재심 사건을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묵비권이나 진술거부권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부족한 방어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지만  최순실 같은 자가 악용하기도 한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집행돼야 할까?, 약자를 위해서 집행돼야 할까? 법은 사회적 합의를 의미하며 법을 입법하는 국회의원의 귀에는 소외받는 약자들의 목소리보다 어떤 단체나 힘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먼저 들어 온다
법의 집행에서 약자를 배려하거나 배려하는 모습에 공감하게끔 만든다면 법은 아름다울 수 있으며 의미 있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이국운ㅡ 한동대학교 법학부 교수이자 헌법 전문가
헌법은 법의 법으로 최고의 법이며 권력이 시민에게 법률 준수를 요구한다면 시민은 헌법을 만들어서 권력에게 헌법과 법률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독립운동 활동하면서 나라 잃은 백성이고 이론적으로 국가는 없지만 자신을 대한국인으로 소개하였다
나라마다 헌법이 담고 있는 내용은 다르며 헌법 1조만 봐도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알 수 있다
헌법의 취지는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법률을 잘 만들라는 것이며 기본권이 헌법에 열거되지 않아도 경시되지 아니한다
헌법은 나라의 영혼이며 그 나라의 헌법을 보면 어떤 나라인지를 알 수 있으며 스위스의 헌법에서는 국력이란 열악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누리는 복지에 의해서 평가된다는 선언을 전문에 적어놓았다

리더
김준혁ㅡ역사 교수이자 역사 전문가이며 정조 임금 연구가
정조의 이름 이산(李祘, 베풀산祘)은 영조가 손자에게 백성을 위해 모든 것을 베풀라는 의미로 이름을 지어주었다
취미로 그림 그리기와 도장 파기,
모두 명중시키면 사람이 오만해질 수 있으니 겸손하기 위해 50발 중에서 49발을 가운데 명중시키고 한 발을 허공에 쐈다
조선의 문화적 기틀을 만든 분이 세종대왕이라면 세종시대 문화를 재현하려고 노력했던 분이 정조이다
노론의 후원으로 왕이 된 영조와 소론과 가깝게 지낸 사도세자
영조는 역적의 아들은 왕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정조를 첫째 아들인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시킨다
영조 나이 82세, 정조 24세에 대리 청정을 하였으며 그해 영조가 승하하고 경희궁 숭정전에서 즉위식을 올릴 때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외쳤다
정조의 개혁 정책으로 서얼제도 혁파로 서자 출신인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등 등용, 자유 시장을 위해 금난전권 폐지, 허비되는 국방비 절약을 위해 군대 통폐합, 10 살 미만의 고아들을 국가가 책임,
백성의 나라인 `민국'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
노비제도를 개혁하려 준비 중 사망
1777년 자객이 정조의 침전인 경희궁 존현각에 침입하였으나 미리 눈치채고 소리를 지른 후 도망 가서 살았으며 창덕궁으로 이어한 후에도 자객이 침입하였으나 무사가 자객을 제압하였다
정조의 죽음에는 하루 3~4시간만 자고 업무에 열중하여 생긴 과로사설, 정조의 체질에 맞지 않는 인삼 복용에 따른 부작용으로 인한 사망설, 정순왕후에 의한 독살설.

김종대ㅡ소신 있는 법조인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의 뿌리에는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 정신이 있으며 당황포, 안골포 해전에서 아군의 공격을 받고 10척의 배를 버리고 육지로 달아나자 이순신은 9척은 불 태우고 1척은 적군이 타고 돌아가도록 하여 바다에서 격퇴시켰다. 이유는 적에게 배가 없으면 민가로 내려가 백성을 해칠 것이 우려되어서이다
이순신은 15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외가인 아산으로 이사하여 28살에 무과 시험에 낙방, 32살에 무과에 합격
임진왜란 일어나기 1년2개월 전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후 전쟁을 예견하고 거북선 등을 준비하였다
이순신은 부하들과 소통을 잘하여 함께하는 일이 많았으며 전쟁 중 군기 확립을 위해 탈영병을 참수하였다
이순신은 4년간 한산도에 있으면서 서해로 들어가는 길목인 지금의 통영대교 밑인 견내량을 고수하여 호남의 곡창지대를 지켜 전쟁 동안 식량 보급이 가능하여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류성룡은 부의 극심한 편중 사회의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 양반에게도 세금을 내도록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양반들은 류성룡을 없애기 위해  탄핵을 하여 이로 인해 류성룡이 한양을 떠나는 날,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였다
이순신은 선조의 출전 명령 불복종으로 한양으로 압송 된 사이 원균이 한산도 통제사로 부임 후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여 많은 군사와 판옥선 및 거분선을 잃고 이순신이 백의종군하여 울돌목 명량해전에서 적군 133척을 맞아 아군 12척(아군 11척은 뒷쪽에서 관망하였고 이순신 1척만 적군과 싸우다 아군의 승리가 보이자 2척이 합세하였다)이 대승을 이룬다

역사
한명기ㅡ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역사학계의 권위자
663년 백촌강 전투에서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게 백제와 일본 연합군이 패하여 백제가 망하고 668년 고구려가 멸망 후 당나라가 신라를 자신들에게 복속시키려하자 신라는 676년 당나라 세력을 몰아 낸다
일본은 통일신라에게 천왕을 모시는 자신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라 하자 통일신라는 대등한 국가라 주장하여 8세기 이후 일본과의 공식적인 정치적 외교관계는 중단된다
1350~1380년에 수백 척의 극심한 왜구의 잦은 출몰로 수도를 철원으로 옮기자는 의견이 나왔으며 왜구 포용정책으로 경제적 기반을 제공(삼포 지역에 일본인 거주 허용, 토지 분양, 결혼 알선, 벼슬 하사)하여 평화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왜관에 있던 일본인이 가이드 역할을 하는 부작용이 발생하였다
일본은 포르투갈로부터 조총이 들어왔고
중국은 포르투갈로부터 블랑기포가 들어왔으며 임진왜란 때 사용되었다
서애 류성룡이 임진왜란 후 고향 안동에서 쓴 <징비록>의 징비라는 말은 과거의 잘못을 잘 돌아봐서 미래에 대비하라는 뜻으로 책이지만 거의 읽혀지지 않았다가 1712년 일본에 간 사신이 오사카 상업지구 난전에서 쌓아놓고 판매하는 것을 발견하여 알려졌다
정묘호란은 후금이 강성해지자 명나라가 후금과의 교역을 끊자 후금이 경제적 활로를 타개하기 위해 벌인 전쟁이며 인조의 항복으로 후금과 형제의 나라가 되었다
후금이 황제의 나라임을 통보하고 인조 부인 사망으로 조문 차 후금의 용골대가 조선에 입국하려다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고국으로 돌아가 조선과 재발한 전쟁이 병자호란이며 남한산성에서 47일 버티다 삼전도에서 인조가 항복한다.
전쟁 후 노동력과 군사력 활용으로 조선인 수십만 명을 심양까지 800키노미터를 끌고가다 많은 이가 얼어 죽고, 굶어 죽고, 탈출하다 죽었다
한반도 주변 강대국의 힘의 균형 변화를 파악하지  못하여 병자호란이나 임진왜란에서 많은 백성들이 피해를 받았다
일본은 미국의 위협에 의한 문호 개방을 본떠 요시다 쇼인이 조선과 청을 공격해서 이권을 벌충하자는 정한론을 만들어 조선을 강제로 개항시키는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고 동학농민운동을 계기로 한반도에서 청을 몰아내고 조선을 자기 관할권에 넣으려 했다
일본을 패전국으로 만든 미국은 일본의 헌법을 개정하여 군대를 가질 수 없는 국가로 만들었으나 한국 전쟁으로 일본에 주둔한 미군이 한반도로 이동하면서 치안유지를 위해 과거에 경찰, 군인들을 모집하여 자위대의 시초인 경찰 예비대가 만들어 졌다
한국 전쟁으로 미국은 소련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전범국가에서 동맹국이자 파트너로 여기는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을 체결한다
한반도는 늘 주변 강대국의 역학관계 변화에 따라 선택의 기로에 내몰릴 가능성이 컸으며 그로 심각한 고통을 겪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이 말을 주변 국가에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야 합니다

황석영ㅡ 소설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ㅡ5.18광주항쟁 기록물
1943년 만주 장춘에서 태어나 서울 영등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고등학교 2학년에 4.19가 터졌으며 해병대 입대 후 버트남전에 참전, 5.18 광주항쟁 겪음, 수감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