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최초의 양의사
절망에서 꽃을 피우다
반촌 백정인 아버지와 의원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박서양(1885~1940)은 12세에
성균관 홍재우를 만나 글을 배운다
미국인 선교사이자 의사인 알렌은
다친 황후의 조카 민역익을 치료 후
신임을 얻어 왕립병원 건립을
왕에게 건의하여 승인받는다
광혜원으로 개업 후 제중원으로 개칭
아버지 금수산은 백정들에게 맞아
만신창이 된 아들을 제중원에 맡기고
알렌은 백정이지만 재능있는
박서양에게 의학을 가르친다
박서양은 귀국하는 알렌을 설득하여
미국으로 동행하여 유학가려 하였지만
실패하고 아베 세이지의사의 소개로 7년간
일본 유학 후 귀국한다 유학전 알게된
강의원 스승이 남겨준 건물에서 개원하면서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사건),
대원군 타계 등 보게되고 김홍집 집을 이용하여
개관한 의학교 교관이 되지만 백정출신이라는
이유로 일부 학생이 배움을 거부한다
짧은 교관 생활을 접고 대한의원에 근무 중
고종 서거(1919년 1월 21일)하자
조선독립을 위해 제국익문사(1902년6월 고종이
설립한 국가정보기관) 일원으로 만주로 떠난다.
실제 박서양은 1908년에 8년 교육 마치고
귀국 후 제중원에서 교편을 잡고
1917년 만주로 갔다가 1936년 귀국 후
1940년 56세로 세상을 떠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