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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은 살아 있다 => 서울역사박물관 / 강홍빈

더카나(더날카로운나) 2021. 4. 4. 14:21


이 책은 '경희궁 특별전' 도록을 위하여 집필한 것으로 경희궁의 창건에서 재건기의 건축상 변화를 서술하였다
400여 년 전 동궐인 창덕궁과 함께 서궐인 경덕궁으로 양궐체제의 한 축으로 중요한 궁궐이었으며 규모는 작으나 조망이 좋았으며 숙종, 영조, 정조는 경희궁에서 시를 읊었으며 고종 때는 경복궁 중건에 많은 전각이 헐렸으며 일제 때 경성중학교, 총독부관사가 들어서면서 궁은 거의 사라졌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창덕궁과 창경궁을 재건 후 인경궁 공사 중 정원군(선조의 아들이자 인조의 아버지)의 집에 왕기가 서려있다는 말에 경덕궁(1760년에 영조는 원종(인조의 아버지)의 시호 '경덕'과 동음이라 경덕궁에서 경희궁으로 이름을 바꿈)을  먼저 건설하여 1620년에 완성했으며 더 크게 지으려했던 인경궁은 인조반정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숙종은 경희궁에서 태어나 경희궁에서 승하한 유일한 왕이다
현감 이신이 쓴 흥화문 현판 글씨가 명필이어서 밤에도 붉게 빛나 그 광채가 야주개고개까지 미친다하여 경희궁을 '야주개 대궐'로 불리기도 한다
현존하는 이신의 글씨로 북한산 구천계곡에 있는 '구천은폭'  각자가 있다
경희궁으로 들어가는 정문은 흥화문이며 그 외 4개가 더 있으며 흥화문과 금천교를 지나 안쪽에 남향의 숭정문을 지나면 법전인 숭정전이 있고 뒤편에 편전인 자정전이 있으며 북서쪽에 영조의 어진을 모시고 있는 태령전이 있으며 후면에는 경희궁 건설의 배경이 된 기묘한 모양의 바위에서 물이 난다는 서암이 있다
궁의 중앙부에는 정사를 보는 흥정당과 대내의 정침인 융복전과 침전인 회상전이 있으며 흥화문 가까이 동궁인 경현당이 있다
북동쪽에 대비를 모시는 장락전과 연회 장소인 광명전이 있고 영취정과 춘화정이 북쪽에 있다
정조가 1776년 즉위하면서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외친 곳이 숭정전이고 세손 시절 혜경궁 홍씨의 추억이 있는 곳은 동궁의 경현당이다
현재 경희궁 내부에 있는 숭정전은 2002년에 복원되어 일반인에게 공개된 것이며 동국대학교 정각원의 법전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본래의 숭정전이다
광해군은 1615년의 창경궁 중건을 시작으로 1617년부터 1620년 사이의 경희궁 창건, 1616년부터 1623년 사이의 인경궁 공사 중에 인조반정으로 중단되었지만 어느 궁궐에도 이어하지 못하고 왕위에서 쫓겨났다
숙종은 광해군 폐정의 산물로 헐릴 위기에 처한 경덕궁을 원조믜 구궁이자 인조의 잠저(왕위에 오르기 전 사는 집)라는 인식으로 바꾸기 위해 덕유당 뒤쪽 바위에 '서암'이란 글씨를 어필로 새기고 영조는 왕위계승의 정통성을 시각적, 공간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어필을 새긴 현판을 게시하게 하였다
순조29년에 일어난 화재로 전각이 많이 소실되어 중건 후 <서궐영건도감의궤>가 편찬되었다
경희궁은 조선 후기  숙종, 영조, 정조에 이르는 18세기 국가 정무와 왕실 문화가 꽃을 피운 주요 무대였다
인조는 이괄의 난으로 황폐해진 창덕궁과 창경궁으로 가지 못하고 경희궁에서 실질적인 업무를 봤다
18세기 숙종 대와 영조 대는 경희궁에서, 19세기 초 순조 대와 헌종 대는 창경궁에서, 19세기 말 고종 대는 중건된 경복궁에서, 20 세기 초 대한제국기에는 덕수궁에서 주로 연례가 행해졌다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 편전인 흥정당, 침전인 광명전, 동궁인 경현당을 배경으로 한 궁중행사도가 현존하고 있다